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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조선의 대형프로젝트]운하를 뚫어라!

역사통

by 노페이스 2019. 7. 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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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올 댓 비디오의 노페이스입니다.

여러분은 고려와 조선에서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위치는 화살표와 같이 태안군에 있습니다.

어? 육지가 한참 남았는데?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 이유는 간척사업을 통해 지도가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를 한번 보시죠. 바다가 더 넓었고 육지는 12km정도의 거리였습니다.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 인종조에

"정습명을 태안군에 보내 운하를 뚫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500여 년에 걸쳐 11차례나 시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려와 조선은 이 쉽지 않은 일을 시도했을까요?

 

고려와 조선은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엄청난 양의 세곡(세금)을

조운선을 통해 운송하였습니다.

 

고려와 조선은 이 조운선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곡을 옮기는 항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항로 중 안흥량이라는 지점을 꼭 통과해야 했는데 이곳은 많은

암초와 심한 파도로 지금도 항해가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흥량의 원래 이름은 난행량으로 배가 지나다니기 어려운 바다라는

뜻이였습니다. 후에 나라에서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름을

안흥량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KBS 천상의 컬렉션에 소개된 적 있는 마도3호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럼 왜 먼 바다로 돌아가지 않았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을 육지를 보며 운행을 해야했던 당시 항해기술과 혹시 있을 수 있는

삥땅을 감시하기 위해 육지근처로 항해를 해야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조선 초 해양사고 기록을 보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려줍니다.

 

태종 3년    34척

태종 4년    16척

태종 14년   66척

세조 원년   54척

 

이 정도이면 국고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태종은 직접 태안군을 2번이나 방문하기도 하였답니다.

 

하지만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바닥에 거대하 화강암 암반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공사 공구는 너무도 빈약했을 것입니다.

 

이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종 이방원의 책사 하륜이 새 아이디를 냈습니다.

땅을 팔 수 없는 곳에 높이가 다른 각각의 저수지를 만들고 세곡을 작은 배로 옮겨 실는 것이였습니다.

현대 운하에서 사용되는 감문식공법과 비숫한 이 방법은 놀라운 발상이였습니다.

하지만 곧 문제점이 들어났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기간에 저수량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운하는 계속 사용하지 못하고 없어지게 되었답니다.

 

그후에 조선은 강을 이용하는 방법등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올 댓 비디오의 노페이스였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하시면 제 유튜브채널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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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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