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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들이 관우를 모시는 역사적 이유

종교통

by 노페이스 2019. 6. 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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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올 댓 비디오의 노페이스입니다.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나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분들이 있겠지요.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의리와 충성에 상징 관우입니다.

 

중국본토나 화교나 중국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관우신앙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우신앙이 우리나라 무속신앙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언제부터 또 어떠한 이유로 관우가 우리에게도 신이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 남묘는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이 남묘는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 장수 진인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명나라 군사들은 주둔하는 곳마다 이렇게 관우묘를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네요.

 

특히 명황제 신종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적극적으로

관우묘를 지을 것을 요청하여 친필 명판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하여 짓게 된 것이 서울 동묘입니다. 명나라의 요청으로 짓는 것이지만

전란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는 시점에서 동묘를 짓는 것은 허황된 일로 간주되고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조선에는 관우신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관우에 대한 어떠한 감동도

없었던 것입니다.

 

경북 안동에서는 관우묘(무안왕묘)를 세웠다가 공자묘(문묘)와 마주본다는 이유로

관우묘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관우묘가 천덕꾸러기였던 것이죠.

 

삼국지연의에 대한 반응도 냉담했습니다.

- 이식 택당집 -

통렬히 금지하여 진나라 때와 같이 불태워야 한다.

 

 

이러한 시각은 차차 변화하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사건은 명나라의

폐망입니다.

 

당시 명나라 사대주의가 팽배하던 조선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소중화사상이다. 즉 조선이 명나라의

계승자라는 것이다.

 

망한 나라, 명나라 황제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던 만동묘

(꼭 이래야만 했니?)

 

이후 숙종등의 왕들은 곳곳에 관우묘(관악묘)를 짓고 참배를 하였습니다.

관우묘를 통해 충의를 강조하고 왕권강화를 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삼국지연의의 인기도 높아만 갔습니다.

- 성호사설 -

집집마다 모두 가지고 있으며, 과거시험문제로도 출제되었다.

 

 

조선말 고종 역시 북묘를 세우고 관우신의 은덕으로 서양외세를

물리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종의 슬기로운 생각(?)으로 우리나라에 관우묘는 30여개로 늘어났는데요.

 

하지만 알다시피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국가제사가 폐지되었습니다.

이 때 관우묘의 제사도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국가에서 조성된 관우신앙은 민간으로 이어져서 관성교라는 신흥종교를 만들기도

하고

 

계속하여 민간의 무속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관우신앙이라는 것은 국가에 충성을 강조하는데 이용되었고

강한 사대주의가 묻어있다고 할 수 있네요.

 

지금까지 올 댓 비디오였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하시면 제 채널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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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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